태어나면서부터 무릎 기형으로 무릎 꿇고 다녀야 했던 예멘 청년 압둘라흐만. 하루 넘도록 아시아 대륙 반대쪽, 한반도 끝자락 여수까지 사투를 벌이며 와서 병상에 누웠다. 뼈를 자르고 인공관절을 이식하며 다섯 번의 수술 끝에 기적이 일어났다. 다음 생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는데, 두 다리로 서서 걷다니⋯. 압둘라흐만은 퇴원 전 병실로 자신을 돌봐준 의료진을 초대해 정성을 다해 만든케밥을 대접했다.
지난해 이 병원 2층 로비에선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울려 퍼졌다. 중국 음악 교사 저우카이펑의 피아노 연주였다. 척추가 휘어 서지도, 걷지도 못했던 8세 소녀는 2011년 “한국 가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선교사 어머니 소개로 병원에 왔다. 4년 동안 6번의 수술 뒤 목발을 짚고 걸어 나갔고 11년 만에 음악 교사가 돼 돌아와 ‘보은의 연주’를 펼친 것.
이런 기적들이 펼쳐지고 있는, 여수애양병원(이하 애양병원)의 이의상 원장(65)은 “예멘 청년이 케밥을 건낼 때, 저우카이펑이 연주를 마치고 서툰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며 “이렇게 환자에게 감동 받을 수 있는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의상 병원장이 여수애양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감사 인사를 하러 온 저우카이펑(오른쪽 가운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여수애양병원
애양병원은 안 아픈 사람도 구경가는, 절경의 병원이다. 동틀녘, 해질녘에 병원 앞 쪽빛 바다에 펼쳐지는 햇살(윤슬)은 탄성을 자아낸다. 짱뚱어가 겨울잠 자는 갯벌 위로 바다 건너 달섬까지 150m를 잇는 마루다리는 저절로 스마트폰을 꺼내게 만든다. 봄바람 불면 개나리, 벚꽃, 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펴 산책하는 환자들의 마음까지 포근하게 만들고, 2011년 준공된 세련된 디자인의 5층 유리 병동은 주위의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그러나 1911년 병원 설립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어떤 풍경보다 아름답다는 것이 애양병원을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다. 완고한 무신론자도 이 병원 이야기를 들으면 “어쩌면 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물러설 정도다.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도 힘든 이야기들을 잇고 있는 이의상 원장은 “우리 병원은 한센병 환자를 치유하면서 시작했고, 부유한 사람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찾아왔다. 가난하고 힘든 환자들을 성심껏 치료하다 보니 이제는 전국을 넘어 해외에서까지 환자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의상 여수애양병원장. 사진=최승식 전문기자
-선교사들이 병원을 만들었고, 손양원 목사가 헌신했고 최근엔 김인권 전 원장이 병원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 병원은 목포에서 의료 선교를 하던 의사 윌리 해밀턴 포사이트가 광주의 선교사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조랑말을 타고 광주로 가다가 길가에 쓰러져 있던 여성 한센병 환자를 자신의 말에 태워 광주진료소 벽돌가마로 데려가 치료한 것이 시작이다. 1911년 의사 로버트 윌슨(우월순)이 포사이트를 기리기 위해 설립한 광주나병원이 여수로 옮기면서 지금의 애양병원이 됐다. 초기엔 한센병 환자들이 많았지만 1960년부터 소아마비 후유증 환자를 비롯한 장애인 환자들을 주로 돌봤다. 한센병 환자는 피부 치료와 함께 손발의 굽은 관절 치료가 필수이고, 장애인 환자도 뼈와 관절 수술이 필요할 때가 많다. 이들을 치료하면서 자연스럽게 재활과 정형외과 수술 전문 병원으로 거듭 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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